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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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집 없는 동물들단편/단상 2018. 1. 8. 07:18
오늘은 내가 다시 한참 낮잠으로 당신을 잊은 날입니다.당신은 화를 냈습니다. 오늘도 어쩌면 앞으로도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평소였으면 난 당신의 눈치보고, 화를 풀기 위해서 종달새라도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미안합니다."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당신의 모습에 낙시바늘에 꿴 금붕어가 되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그냥, 이건 잠깐 흐르다 암초에 맴도는 작은 소용돌이일 수도 있고, 언젠가 '그땐 그랬지' 하며 지나가버릴 변덕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망칠까봐 무서웠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한테 지금보다 더 크게 화내고 미워할 모습에, 그보다 실망하고 자신의 안목에 좌절할 당신의 모습에도, 찾아오지 않을 미래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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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러스단편/단상 2016. 12. 26. 19:29
바이러스 화창한 날이, 나는 작아지고 말았다. 동경했던 종류. 나와, 눈물, 슬픔, 외로움, 배려심, 능력, 사랑의 특이점까지 선망을 연기했다. 연애를 하고, 핑계들이 늙어만 갔다. 그제야 외로움이 하늘에서 툭, 하니 떨어졌다 소나기가 내리는 날이었다 목구멍에서, 보다 깊은 속에서 메아리치는 천둥이, 눈에 벼락을 맞았다. 여러 사람들에게, 눈물, 슬픔, 공감과 박제 전시된 사랑 그걸 빌려온 것이다 내 것인 양 으쓱거려봐야, 상영이 시작되었다. 전염병이 돌았고 나는 혼자 남았다. 돌연변이가 손톱을 갉아먹었다 그때. 외롭지 않은 사람, 웃음이 그리고 그 속에 올망졸망 꽃 핀 보조개가, 구름 한 점 없는 햇빛이라, 두 눈을 감았다 스스로 뺨을 때리고, 꿈과 자각 속에서 나는 잠이 들었을까. 필연적으로 생각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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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러디단편/이야기 2016. 5. 12. 23:52
6마디로 사람을 울리는 소설은 사실 남자는 벼룩시장을 좋아했다.기사를 쓰다 막히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그는 벼룩시장을 찾았고, 온갖 이야기를 메모해 집으로 돌아갔다. 그에게 이 행위는 사냥의 한 종류처럼 느껴져 벼룩시장을 찾을 때마다 묘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도 그는 이야기의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헐레벌떡 둥지를 박차고 사냥에 나선 참이었다. 벼룩시장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고, 사람들의 수 보다 많은 물건이 있었다. 그 중 가장 질이 좋은 이야기를 사냥하는 게 자신의 역할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벼룩시장에 도착하면 사람이 없는 가게부터 돌았다. 특별한 물건을 찾는 건 아니었다. 그보다는 사람들의 속삭임을 듣는 것, 특별하지 않은 물건이 없고, 자신에게는 특별한 물건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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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잇단편/단상 2016. 5. 12. 23:24
포스트 잇 과일 껍질을 선물 받았다.헤실헤실웃는 동사는 명사가'웃다'는 '달리다'는, 우뚝멈춰 섰다. 껍데기는쥐어 짜내도 눈물 한 방울조차그래 죽먹을, 손에 묻질 않는, 던져버리고 싶은즙이 한 방울 눈에서 나왔다알맹이가 되었다그러므로 난껍데기로 둘러싼다.짜증나다, 싫다, 슬프다, 일찍 눈떠진 아침, 일찍 눈감은 밤, 씻을 수 없는 점심, 세상엔 미친놈이 많다, 너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 무명그룹의 갑작스러운 인지도 상승, 그 곡은 제목과 리듬이랑 안 맞는다, 신난다, 비명, 비명의 허리가 끊어진다. 두루마리 휴지도 끊어진다, 생각도 끊어진다. 스크린이 둘로 끊어진다, 재회의 부재, 끊어진 다리. 끊어지면 사라진다. 모니터는 새로 구매해야만 한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분리수거는 수요일, 글을 써서 궁상맞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