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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 집 없는 동물들
    단편/단상 2018. 1. 8. 07:18

    오늘은 내가 다시 한참 낮잠으로 당신을 잊은 날입니다.

    당신은 화를 냈습니다. 오늘도 어쩌면 앞으로도 화를 낼지도 모르겠습니다.

    평소였으면 난 당신의 눈치보고, 화를 풀기 위해서 종달새라도 되었을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는 당신의 모습에 낙시바늘에 꿴 금붕어가 되었습니다, 머릿속이 하얗습니다.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이건 잠깐 흐르다 암초에 맴도는 작은 소용돌이일 수도 있고, 언젠가 '그땐 그랬지' 하며 지나가버릴 변덕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때문에 당신의 인생을 망칠까봐 무서웠습니다. 좀 더 시간이 흐르고 나한테 지금보다 더 크게 화내고 미워할 모습에, 그보다 실망하고 자신의 안목에 좌절할 당신의 모습에도, 찾아오지 않을 미래의 기억이 무서워졌습니다.

    당신은 화나면 신기루처럼 흐릿해집니다. 예전에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연기,"

    솔직한 심정. 나는 늙고 게으른 나귀를 닮았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짐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나이 대신 겁을 먹고 있습니다."

    철없을 때 자신만만했던 아이는 추억 속에서나 호흡기를 달았습니다. 사람은 가면 쓴 욕심쟁이가 되었습니다. 당신이 나한테 무슨 말이라도 해보라고 한 순간이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또다시 밀어낼 때 나는 문득 이렇게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직 자리가 없을 때, 핑계라도 있을 때 그냥 남들처럼 성격이 안 맞아서 헤어졌어.’라고 말할 수 있는 뻘로 남고 싶었습니다. 그게 당신이 나를 좋았던 사람으로 추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입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미련이고 미련하고 혹은 미숙의 미련입니다. 다른 이름으로는 욕심입니다. 나는 많이 모자랍니다. 겁도 많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자는 틈에야 말이 아니라 글로 전합니다.

    "당신은 나를 버려도 비난하지 않겠습니다. 내가 모자란 탓이니까요. 숨쉬기가 힘듭니다. 잠깐 쉬겠습니다."


    이성이 마비된 시간과 읽기 힘든 편지는 나를 또 미안해하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우리가 우리이기 이전, 남이었을 때가 저는 가끔 생각납니다. 그때의 아픔이, 벅참이, 상황들이 생각납니다. 바다는 달님에게 끌렸고, 밀린 끝에 오히려 나는 감성에 팔려 갯벌 같은 글을 썼었습니다. 어쩌다 만나게 되었는데, 둘 다 많이 힘들어 보입니다. 나이는 계속 먹어갑니다. 한 살, 한 살이 찰 때마다 어릴 때와는 다른 무게가 우리를 좀먹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내가 당신의 둥지를 불법점거한 뻐꾸기임을 이미 당신도, 나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둥지에 있는 것만으로 여보는 많은 희생을 할 수밖에 없음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제 몸뚱이보다 커버린 새끼를 키우는 어미 새를 본 적이 있습니다. 뻐꾸기 새끼 입에 먹이를 넣어주는 모습은 마치 둥지 주인이 잡혀먹는 모습과 같았습니다. 커다란 입에 머리를 박고 그 속에 제가 모은 모든 걸 토해내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꼴이 그렇게 되지 않을까 나는 무섭습니다. 결국 무게를 견디지 못한 당신의 둥지가 무너질까봐 무섭습니다. 제 새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실망할 어미의 모습이 두렵습니다. 그래서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습니다.

    "사실 거짓말일지도 모릅니다. 나는 버림받으면 자격도 없이 울고, 당신을 욕할지도 모릅니다."

    이렇게라도 꾸역꾸역 옆에 있고 싶습니다. 당신도 나와 멀어짐에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한 줄기 생명선을 잡고 있습니다. 썩은 동아줄이 끊어져 떨어진다고 해도 그 줄에 매달려야만 하는 게 욕심쟁이 짐승입니다. 나 때문에 많이 울었던 당신은 더 울지도 모릅니다. 나는 이기적이어서 그런 사실보다 내가 중요한가 봅니다.

    내가 옆에 있으면 많은 가능성들이 사라집니다. 당신도 나도 늙고만 있습니다그때가 돼서야 날 버려도 늦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조금이라도 더 어릴 때 당신의 인생에 도움 안될 것 같은 나를 버렸으면 하는 마음도, 당신 옆에서 어린아이처럼 놀고 싶은 마음도 진심이라 나는 많이 혼란스럽습니다. 혼란스러워서 말하지 못했고, 글이 깔끔하지 못했고, 버림받을까봐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함께 해주셨으면 고맙겠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 나는 어떠한 당신도 응원하겠습니다.

     

    보내고 후회할 글,

    그래서 날아가지 못 한 비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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